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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량 석조여래좌상…경남유형문화재 제48호⑯
오량 석조여래좌상…경남유형문화재 제48호⑯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7.2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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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량석조여래좌상-신광사 소재. 
   이 불상을 바라보고 기도를 하면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져 전국에서 참배객이 모여들기도 했다.
   여름이지만 석굴안이라 시원한 느낌.

오량 석조여래좌상

이 불상은 1950년 무렵에 석불암 앞 산밑에서 논을 개간하던 사람에 의해 발견된 뒤, 이 곳 석불암에 모셔지게 됐다. 석불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계량형의 단아하고 근엄한 인상이었으나, 덧칠을 하고 눈과 눈썹, 수염을 그려 넣음으로써 오히려 어색한 인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왼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몸에 바짝 붙어있고 옷 주름의 조각도 촘촘히 표현되어 어느정도 입체감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어깨 부분을 너무 각이 지게 처리해 풍성하고 여유 있는 모습을 잃어 버렸다. 손모양은 부처가 악마를 누르고 깨달음을 이루는 순간을 상징한다는 모습의 항마촉지인으로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과 같이 가부좌를 한 불상에서만 볼 수 있다.

상체가 왜소하게 보이는데 비해 하체는 상대적으로 길고 높게 표현해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온전하게 남아있는 받침대는 통일신라 말기에 볼 수 있는 8각 연꽃무늬 받침대 양식이다. 불상의 조성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여래좌상은 발견 당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토지 개간을 하던 농부의 괭이에 의해 석조여래좌상이 출토 되었을 때 암자였던 이곳보다 규모가 큰 통영 안정사의 스님들이 모셔가려 하였다.

인부들이 들어서 석조여래좌상을 옮기기 시작하였는데, 10미터 정도 간 후 잠시 쉬었다가 다시 들었는데 석조여래좌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더 많은 인부를 동원했지만 전혀 들리지 않아 다시 위로 모시려고 하니 들려 지금의 자리로 모시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석굴에 들어가고 싶어 오신 석조여래부처님은 신도들에게 현몽도 많이 하여,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꿈속에서 부처님을 뵙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거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펌)

공식명칭 오량석조여래좌상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48
지정일 1972년 2월 12일
한자명칭 烏良石造如來坐像
테마 유물, 불교조각, 석조, 불상
시대 고려시대
주소 경남 거제시 사등면 오량리 신광사
▲ 오량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 신광사 전경
▲ 오량석조여래좌상이 모셔셔 있는 석굴
     삼천불조오십삼불전 이라 적혀있다
▲ 신광사 대웅전내 모습목조로 된 여러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 신광사 연못 위 해수관음상.거제대교를 굽어다 보고 있다.
▲ 대웅전 뒷편에 모셔져있는 약사여래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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